지난호에 이어 태종 이방원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1차 왕자의 난 이후 정종(1398년∼1400년)이 왕위에 오른다. .
그때 넷째 형인 방간이 이방원에게 왕위를 넘기는 것에 불만을 품고 박포와 공모하여 방원 일당을 제거하려 하자, 이를 평정하고 형인 이방간을 유배를 보낸다.
이때 일어난 방간, 박포의 난이 제2차 왕자의 난이라 한다. 이후 1400년에 왕위에 오르게 되고, 조선 3대 임금인 태종이 된다.
태종은 다른 왕들처럼 궁에서 태어나 자란 것이 아니라 사가에서 자라 과거를 통해서 벼슬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조정 관리들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진정한 왕으로 인정받은 태종은 왕권강화와 중앙집권 확립을 위하여 공신과 외척을 제거한다. 그중 대표적인 사건이 민무구 형제이다. 민무구 형제가 누구인가. 바로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의 남동생들이다.
이들은 태종의 혁명동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목숨을 걸고 태종의 왕위 등극을 도운 1등 공신들이였다. 이들은 세자인 이제(양영대군)를 등에 업고 권세를 탐하는 것이 못마땅해 민무구 형제들을 죽였다.
또한 태종은 중앙집권 확립을 위해 사병을 폐지하고, 의정부 합좌에 참여하였던 삼사.예문춘추관. 삼군총제를 제외시키고 의정부 구성원으로만 최고 국정을 합의하게 함으로써 의정부제를 정립하였다.
또한 간쟁을 관장하던 문화부낭사를 사간원으로 삼사는 사평부로 개칭하고 삼군도총제부를 신설하였으며 의정부의 서무를 육조에서 분장하게 하는 등 관제개혁을 통하여 왕권의 강화와 중앙집권 확립을 도모하였다.
종교적으로는 억불숭유 정책을 강화하여 전국의 많은 사찰을 폐쇄한 후, 사찰에 소속된 토지. 노비를 몰수하였다.
한편 호패법을 실시하여 양반. 관리에게 농민에 이르기까지 국민모두가 이를 소지하게 함으로써 인적 자원을 정확하게 파악하였다.
또 신문고를 설치하여 백성들의 억울한 사정을 풀어주기도 했고 의금부를 설치하여 왕권강화와 역모를 방지하는 기관을 두기도 했다.
이렇듯 태종은 왕위에 오른 후에 많은 제도를 개혁하여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민심을 수습하여 안정시켰다.
이렇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지만 늘 정통성에 대한 자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자식들만은 그렇게 되지 않고 서로 위하면서 살기를 원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태종은 후계자 결정에도 신중을 기했으나 첫째아들 양녕은 자신을 너무도 닮았다.
태종은 자신의 후계자는 좀 더 조선왕조를 반석에 오려놓을 수 있는 자질을 가진 군주이기를 바랬다.
양녕대군이 문제를 일으키자 마음이 떠난 태종은 셋째아들인 충령에게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다. 이후 1418년 양녕대군을 폐위하고 충령대군을 세자로 책봉한다.
그리고 책봉한지 1달만에 군통수권을 제외한 나머지 권한을 모두 충령에게 넘긴다.
이렇게 이방원은 골육상잔의 비극으로 왕위에 올라 여러 정적을 제거하기도하여 비판도 받기도 하지만, 많은 제도 개혁과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조선 최고의 후계자를 선택해 조선의 역사에서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왕들 중에 하나이다.
태종의 능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헌릉이며 사적 194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제) 조선에서 인적 자원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제도는?
호패법조성욱 기자의 조선 왕 이야기 ④ 태 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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