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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이야기 ②

조선의 제1대 왕 (1335년 10월 11일∼1408년 5월 24일, 재위 1392년∼1398년)

기사입력 2009-02-06 13:3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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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1대 왕 (1335년 10월 11일∼1408년 5월 24일, 재위 1392년∼1398년)
본관 전주. 자 중결(仲潔). 호 송헌(松軒). 성 이(李). 휘(諱) 성계(成桂).
자 그럼 지금부터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에 대해 알아볼까요.

이성계는 1335년 함경도 영흥에서 태어났는데. 그는 출생부터 신비로웠다고 합니다.

어느날 이성계의 아버지(이자춘)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하늘에 오색구름을 타고 선녀가 내려와 절을 하며 이야기하기를 “천계에서 그대에게 내리는 것이니, 장차 이것을 동쪽 나라를 측량할 때 쓰십시요” 라며 소매 속에서 침척(바느질에 사용하는자)을 꺼내 주었다고 합니다.
 
그 자를 받은 뒤 이성계의 어머니는 임신을 해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의 얼굴은 용과 같고, 눈은 봉황처럼 부리부리하여 보는 사람들 모두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조선의 태조 이성계입니다.

이성계는 어릴 때부터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했는데 신궁이라 불릴 만큼 천하의 명궁이라고 불려지곤 했답니다.

바로 영웅 기질을 타고난 것이지요, 그 후 30여년 동안 전쟁터에서 한번도 패하지 않은 불패 신화를 만든 장수가 되었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그 뛰어난 기질을 인정한 고려왕은 이성계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1356년 공민왕의 명을 받아 아버지와 함께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공을 세웠고, 1361년에 상만호가 되어 함경도 지방의 경비를 맡게 되지요.

이후 홍건적 토별과 함경도 함주에서 왜구를 격파 등 많은 승전도 올리게 되지요, 이렇듯 고려 말기의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상황은 이성계를 변방의 무명 장수에서 일약 고려 제일의 장수로 만들게 되었고, 계속되는 승전으로 고려 내에서도 입지를 굳혀 백성들의 신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후 벼슬도 올라 자연스럽게 신진 사대부들이 그의 주위로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당시 중국이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고려에도 친원파와 친명파 사이의 대립이 확대되는 상황 이였습니다.

이때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 문제로 요동정벌이 결정되자 이성계는 출정 반대를 했으나 거절당해 군사를 이끌고 북진하다 위화도에서 회군하자는 결정을 내립니다.

이것이 조선을 세우는 사건, 역사상 큰 사건인 위화도 회군이지요. 이후 도성으로 돌아온 이성계는 우왕을 폐위하고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여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가 됩니다.
 
이 사건 이후 그동안 배제되었던 신진사대부들도 정계에 복귀하여 본격적인 개혁의 계기를 마련합니다.

하지만 신진사대부들 사이에도 사회 개혁 방향을 둘러싸고 서로 대립하여 이색, 정몽주 등의 온건 개혁파와 정도전 등의 급진 개혁파로 나뉘어 싸우게 됩니다.
 
이때 이성계는 급진 개혁파와 연결하여 혁명을 이루어 창왕을 몰아내고 공양왕을 세우면서 정치적인 실권마저 차지하게 됩니다.

이후 정몽주을 비롯한 온건 개혁파를 제거하고 공양왕의 왕위를 물려받는 형식으로 스스로 새 왕조의 태조가 됩니다, 이때부터가 조선의 시작인 것입니다. 1392년에는 개성에서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 서울을 한양으로 천도하여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하는 숭유정책, 농업을 근본으로 하는 농본정책, 외국과 가까이 하여 국가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사대교린정책을 펼쳤는데 이것이 바로 조선의 3대 기본 정책입니다.
 
1398년에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상왕이 되고, 1400년 방원이 즉위하자 태상왕이 되었습니다.
 
1408년 5월 24일, 불도에 정진하며 조용한 나날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지요. 묘호는 태조, 능은 건원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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